혼자인 회사에 맞는 투자계약
1. 들어가며
AI와 자동화 도구 덕분에 한 사람이 예전의 팀이 하던 일을 해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 「2025년 1인 창조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내 1인 창조기업은 2023년 기준 약 116만 개(5인 미만 공동사업자 포함)로 전년보다 15.4% 늘었습니다. 미국에서도 새로 설립된 스타트업 가운데 1인 창업의 비중이 2019년 23.7%에서 2025년 상반기 36.3%로 높아졌습니다(Carta, Solo Founders Report 2025).
그런데 투자 현장에서 쓰는 계약서는 여전히 ‘팀이 있는 회사’를 전제로 쓰여 있습니다. 법무법인 채비는 2026년 10월 15일 한국엔젤투자협회와 함께 「솔로프리너와 벤처투자 생태계」 포럼을 공동 개최하였고, 저는 세션 2에서 「벤처투자 표준계약서」를 1인 기업의 눈으로 다시 읽고 대안을 제시하였습니다. 그 내용과 패널토크에서 오간 논의를 정리하여 안내드립니다.
2. 솔로프리너는 누구인가: 법에 없는 정의
현행 법령에는 ‘솔로프리너’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가장 가까운 것은 「1인 창조기업 육성에 관한 법률」상 1인 창조기업이지만, 5인 미만의 공동사업자도 포함하므로 공동창업자가 넷인 회사도 해당할 수 있습니다. 소상공인은 상시근로자 10명 미만이면 해당하여 범위가 너무 넓고, 창업기업은 인원 기준이 없으며, 상법상 소규모 회사는 회사의 형태를 말할 뿐 혼자 일하는 방식까지 담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논의를 위해 다음과 같이 정의해 보았습니다. 상시근로자 없이 한 사람이 경영 전반을 단독으로 수행하고, 필요한 인력은 고용이 아닌 외주·협업으로 조달하는 사업자입니다. 개인사업자인지 법인인지는 묻지 않고, 단기 아르바이트나 비상근 임원이 있어도 해당합니다. 반대로 상시근로자를 채용했거나 공동창업자·상근 임원이 함께 경영하면 제외합니다.
기준을 지분이 아니라 ‘경영을 혼자 하는가’에 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분 100%를 요건으로 하면 투자를 받는 순간 솔로프리너가 아니게 되어, 정작 투자계약을 논할 대상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3. 투자받는 순간에는 아직 혼자입니다
위 실태조사에서 1인 창조기업의 85.8%는 개인사업자입니다. 개인사업자에게는 주식이 없으므로 대출이나 정책자금, 동업·수익배분, 매출 연동 상환, 법인전환 조건부 약정 같은 방식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고, 투자자는 회사가 성장해도 그 몫을 나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실무에서는 1인 주주·1인 이사의 법인을 세우고, 보통주나 상환전환우선주를 발행하면서 표준계약서를 쓰게 됩니다.
문제는 시점입니다. 투자금으로 사람을 뽑고 외주를 내재화하려는 솔로프리너라면, 투자계약을 맺는 순간에는 아직 혼자이고 팀은 그 뒤에 꾸려집니다. 미국 Carta 자료를 보면 2024년 설립 기업 중 1인 창업 기업은 30%였지만, 지분투자 금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7%에 그쳤습니다. 법인이 되어 투자가 가능해졌는데도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의 상당 부분은 계약서에 있다고 봅니다.
4. 표준계약서와 1인 단계가 어긋나는 네 지점
검토 대상은 「벤처투자 표준계약서」 2026년 개정판(2026. 6. 30. 발표) 중 상환전환우선주식(분리형) 주주간계약서입니다. 잘 만들어진 계약서이고, 그 안의 통제 조항은 투자자로서 당연한 보호 장치입니다. 이사회도 감사도 직원도 없는 1인 법인이라면 투자자는 오히려 통제 조항을 더 넣고 싶어질 것입니다. 다만 이 계약서는 이사회와 직원이 있는 회사를 전제로 쓰였고, 그 전제가 1인 단계와 어긋나는 지점이 네 곳 있습니다.
- 동의권·협의권: 제5조는 건당 전년도 자산총계의 5% 이상인 자산 취득, 차입, 채무 부담 등을 사전 협의 사항으로 두고(실무 계약서에서는 동의 사항으로 두는 경우도 많습니다), 임직원·주주와의 거래는 동의 사항으로 둡니다. 자산이 1억 원인 1인 법인이라면 500만 원짜리 외주 계약 한 건도 대상이 되고, 대표가 곧 임원이자 주주이므로 대표와 회사 사이의 거래도 모두 걸립니다. 사업계획과 현저히 다른 사업에 착수하는 것도 협의 대상이어서, 빠른 방향 전환이라는 1인 기업의 강점이 절차에 묶입니다. 위반하면 주식매수청구와 위약벌로 이어집니다.
- 겸업·경업금지: 첨부 「퇴사제한 및 경업금지 약정서」 제2조 제1항은 재직 중 투자자와 회사의 동의 없이 다른 기업의 무한책임사원, 이사, 피용자가 될 수 없도록 하며 업종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본계약 제4조 제2항은 회사 기술과 관련된 신회사 설립이나 개인사업을, 제5조 제1항 제5호는 회사 설립 자체를 투자자 동의 사항으로 둡니다. 직장에 다니며 주말에 사업하거나 AI 도구로 여러 사업을 함께 운영하는 솔로프리너의 방식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 유고·사업 중단: 가장 큰 공백입니다. 일반 법인은 대표가 떠나도 다른 사람이 대표를 맡으면 사업이 계속되지만, 솔로프리너는 팀이 꾸려지기 전까지 창업자가 빠지면 사업이 멈춥니다. 계약으로 막기도 어렵습니다. 헌법 제15조는 직업선택의 자유를 보장하고, 이사는 언제든 사임할 수 있으며(상법 제382조 제2항, 민법 제689조), 사망하면 위임은 끝납니다(민법 제690조). 계약서가 가진 장치는 퇴사 제한과 위약벌 정도인데, 이는 무단 이탈에 대해 사후에 금전을 청구하는 수단일 뿐입니다. 사망이나 질병은 누구의 계약 위반도 아니어서 청구할 권리 자체가 생기지 않고, 유고 시 사업을 어떻게 처리할지 정한 조항도 없습니다. 주식은 상속되지만, 사업을 할 사람은 상속되지 않습니다.
- 팀 전제 조항과 보고·감사: 스톡옵션(임직원 등에게 10% 범위에서 부여), 기술인력 채용·퇴직 통지, 임직원 급여 20% 이상 인상 시 협의 같은 조항은 지금은 대상이 없어 비어 있다가 사람을 뽑으면 그대로 작동하므로 큰 문제는 아닙니다. 다만 1년 내 실사, 분기 보고, 외부감사, 자료 제출을 창업자 혼자 감당해야 하는 부담은 조정이 필요합니다.
5. 대안: 미리 막는 통제에서 나중에 확인하는 장치로
그렇다면 문제 되는 조항을 빼면 될까요.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투자자가 사려는 것은 한 사람의 속도와 인사이트인데, 그 투자를 지키려는 장치가 바로 그 장점을 발휘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그렇다고 장치를 빼기만 하면 투자자는 보호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미리 막는 통제를 나중에 확인하는 장치로 옮기고, 이탈을 막는 장치에 더해 남는 것을 지키는 장치를 두는 방향을 제안합니다.
- 동의권은 남길 것, 가볍게 할 것, 덜어낼 것으로 나눕니다. 정관 변경, 증자·감자, 주식관련사채, 스톡옵션, 합병·분할·영업양수도처럼 지분 가치에 직결되는 사항은 그대로 둡니다. 대표 본인과의 거래도 남기되, 보수와 통상 경비는 연간 한도를 정해 미리 동의해 둡니다. 자산총계 비율 기준은 정액(예컨대 2천만 원) 기준으로 바꾸고, 2주 전 서면 통지는 이메일로 하되 정한 기간 안에 답이 없으면 동의한 것으로 봅니다. 사업 방향 전환은 사후 보고로 돌립니다. 임직원 급여 인상 협의는 채용 전까지, 외부감사 관련 사항은 외부감사 대상이 될 때까지 유예하고, 감사받은 재무제표는 결산 재무제표와 세무조정계산서로 대신합니다. 그 대신 투자자에게 투자금 계좌 조회 권한을 주고, 분기 보고는 간이 양식으로 합니다.
- 겸업은 허용할 것을 적고, 금지는 좁힙니다. 계약 당시의 본업과 기존 사업을 별지에 적어 허용하고, 금지 범위는 ‘모든 기업’이 아니라 회사와 경쟁하는 업종과 회사 기술을 쓰는 사업으로 한정합니다. 투자자가 지키려는 것은 결국 창업자가 이 회사에 쓰는 시간이므로, 그 대신 최소 투입 시간(예컨대 주 20시간 이상)이나 성과 목표, 이해충돌 시 통지 의무를 넣습니다. 후속 투자를 유치하면 일정 기간(예컨대 6개월) 안에 전업으로 전환하기로 약정할 수도 있습니다.
- 무단 중단은 기존 수단을 보강해 막습니다. 창업자에게 책임이 있는 무단 중단·이탈에는 위약벌과 주식매수청구권을 유지하되 빈틈을 메웁니다. 지금은 협의 사항인 ‘주요사업의 중단·포기’를 동의 사항으로 올리고, 일정 기간(예컨대 3개월) 이상 사실상 영업을 중단하면 주식매수청구 사유가 되도록 적으며, 퇴사 제한 기간을 ‘팀이 꾸려질 때까지’로 구체화합니다.
- 유고에는 책임을 묻는 대신 사업을 잇는 장치를 둡니다. 사망, 질병, 장기 업무 불능처럼 누구의 책임도 아닌 경우입니다. 투자자나 투자자가 지정한 사람이 창업자(상속인)의 주식을 미리 정한 방식의 가격(예컨대 제3자 평가기관의 평가액)으로 살 수 있는 콜옵션, 경영을 이어받을 사람을 미리 비상근 이사로 선임해 두거나 유고 즉시 선임되도록 하는 예비 이사, 코드·계정·도메인·고객 데이터의 목록과 접근 방법을 맡겨 두는 자산 접근권, 회사를 수익자로 하는 핵심인물 보험이 그것입니다.
- 팀 전제 조항은 지금은 그대로 둡니다. 대신 채용과 조직화 계획을 단계별 목표로 계약에 담습니다.
유고 대비 장치를 설계할 때는 몇 가지를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1인 이사가 없어지면 주주총회를 소집할 사람부터 사라지고, 법원에 일시이사 선임을 청구하는 절차(상법 제386조 제2항)는 시간이 걸리므로, 표준계약서의 투자자 지명이사(제9조)를 활용해 예비 이사를 미리 두는 편이 안전합니다. 주식과 재산상 권리의무는 상속인이 이어받으므로(민법 제1005조) 약정이 상속인에게도 미친다는 점을 계약서에 적어 두고, ‘유고’의 기준(몇 개월 이상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인지)도 따로 정해 두어야 합니다. 위에 든 금액과 기간은 논의를 위한 예시이며, 실제 수치는 투자 건마다 협의하여 정할 사항입니다.
6. 패널토크에서 확인한 방향과 남은 과제
이어진 패널토크에서도 같은 방향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김동환 넥시드벤처스 대표는 미국의 SAFE처럼 1인 창업에 맞는 간이 계약이 머지않아 사회적 합의로 만들어질 것이고, 첫 투자계약서는 지금의 5분의 1 이하로 얇아져야 한다고 전망했습니다. 다만 스케일업 단계에서는 기존 계약과 비슷해질 것이고, 계약이 모든 것을 대신할 수는 없으니 투자자와 창업가 사이의 신뢰가 중요하다는 점도 짚었습니다. 저 역시 많게는 20~30개에 이르는 동의·협의 사항 가운데 상당 부분은 1인 단계에서 덜어낼 수 있고, 후속 투자 때 주주간계약을 다시 쓰면서 정비하면 된다고 봅니다.
남은 과제는 세 가지입니다.
- 1인 단계용 간이 투자계약서: 위 대안을 반영해, 지금의 표준계약서보다 가벼운 표준안이 필요합니다.
- 투자자용 실사 체크리스트: 조직이 아니라 ‘사람’을 보는 실사입니다. 사업 자산이 누구 명의로 되어 있는지, 창업자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 개인사업자 단계의 조달 수단 정비: 법인전환 전에 쓸 수 있는 투자 방식을 정리해야 합니다.
전업 의무와 경업금지, 창업자 유고와 무단 사업 중단은 시간 관계상 패널토크에서 깊이 다루지 못했습니다. 후속 논의에서 이어 가고자 합니다.
7. 마치며: 혼자일 때 맺는 계약은, 혼자인 회사에 맞아야 합니다
투자계약은 창업자가 혼자일 때 맺습니다. 그렇다면 그 계약은 혼자인 회사에 맞아야 합니다. 통제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1인 기업의 속도를 살리면서 투자자가 실제로 걱정하는 위험, 즉 창업자의 이탈과 유고에 정면으로 대비하는 쪽으로 계약의 무게중심을 옮기자는 것입니다. 1인 법인에 대한 투자계약의 검토나 설계가 필요하신 창업가와 투자자께서는 언제든지 법무법인 채비로 문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2026. 10. 15. 포럼 발표 내용을 바탕으로 한 일반적인 정보 제공이며, 개별 사안에 대한 법률 의견이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