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의뢰인들은 지역주택조합이 추진되던 사업부지에 토지를 가지고 있던 소유자였습니다. 과거 조합설립추진위원회와 매매계약을 맺고 1차 계약금을 받았는데, 2차 계약금은 약정한 1년 뒤까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 뒤 토지는 별개로 진행되던 재개발정비사업의 수용 절차에 따라 소유권이 정비사업조합에 넘어갔습니다.
6년이 지난 어느 날, 추진위원회는 소유권이 제3자에게 넘어가 매도인의 귀책으로 이행불능이 됐다며 계약을 해제하고 1차 계약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습니다. 의뢰인 두 분에게 청구된 금액은 각 5,000만 원과 4,000만 원이었습니다. 제가 1심에서 이 두 분을 대리했습니다.
무엇을 다퉜나
계약서에 이런 특약이 있었습니다.
을이 계약금 및 잔금을 지급기일까지 갑에게 지급하지 아니할 경우 본 계약은 무효로 하며, 기 지급된 계약금은 갑에게 귀속된다.
다만 문언이 깔끔하지 않았습니다. 특약이 인용한 조항 번호가 실제로 지급기일을 정한 조항과 달랐습니다. 그래서 첫 준비서면에서 그 번호가 어느 조항을 가리키는지부터 특정했습니다. 판결문도 각주에서 오기로 정리했습니다.
원고는 매수인의 대금지급의무와 매도인의 소유권이전등기의무가 동시이행 관계이므로, 매도인이 이행제공을 한 적이 없는 이상 매수인이 이행지체에 빠진 것이 아니라고 반박했습니다. 세 갈래로 답했습니다.
- 이 특약은 '해제'가 아니라 '실효'를 정한 것이므로 해제 법리가 적용될 여지가 없다
- 가사 해제 규정으로 보더라도, 기한까지 이행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해제된다고
약정한 경우에는 별도의 최고나 해제 의사표시 없이 불이행 자체로 계약이 해제된다. 그 뒤 계약이 유효함을
전제로 논의가 이어지거나 급부 일부가 수령된 사정도 없다
- 2차 계약금 지급의무는 선이행의무다.
계약서 어디에도 2차 계약금과 소유권이전등기를 동시이행으로 정한 부분이 없다
계약서 밖의 사정도 찾았습니다. 원고 대표자는 같은 부지의 다른 토지주들과도 같은 내용의 계약을 맺었다가 같은 시기에 대금을 지급하지 못했고, 그 뒤 별도 법인을 세워 같은 부지에 대해 새 매매계약을 체결한 다음 그 법인의 대표이사로 취임했습니다. 등기부등본으로 확인해 제출했습니다. 계약이 아직 살아 있다고 주장하면서, 정작 본인은 계약이 끝났다는 것을 전제로 움직였던 셈입니다.
결과
법원은 이 특약을 일반적인 계약의 해제나 해지와 달리, 정한 기일에 대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계약의 효력을 무효로 하면서 이미 받은 금원의 귀속까지 정한 특별규정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매도인이 이행제공을 했는지와 관계없이, 매수인이 기일에 지급하지 않은 것만으로 특약의 효력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의뢰인 두 분에 대한 청구는 전부 기각됐고, 그 부분 소송비용도 원고가 부담하게 됐습니다. 같은 판결에서 다른 피고들에 대해서는 청구가 인용됐습니다.
마무리
계약이 오래전에 사실상 끝났더라도 서류로 정리해 두지 않으면, 몇 년 뒤에 소장이 옵니다. 그 때 남는 것은 계약서 문언과, 그 사이에 양쪽이 실제로 어떻게 행동했는지입니다. 문언이 어설프게 적혀 있다면 무엇을 가리키는지부터 정리해야 하고, 상대가 그동안 어떻게 움직였는지도 함께 봐야 합니다. 계약금 반환 청구를 받으셨다면 계약서와 입금 내역만 있어도 어느 쪽이 유리한지 대체로 가려집니다.

